일상/2020~2022

서울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참참. 2020. 6. 23. 21:04

이 계절에는 새벽이라고 하기에는 온 세상이 너무 밝은 아침 6시,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그러고 있으면 출근하는 직장인이 아니라 꼭 서울에 여행 온 사람이 된 것만 같다. 한강의 북쪽 강변을 따라서 직장이 있는 송파를 향해 동쪽으로 페달을 밟으며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반짝이는 물과 남쪽 강변을 바라봤다. 먼 나라의 도시에서 느끼던 낯설고 설레는 기분을 떠올렸다. 옆으로 지나치는 일찍부터 운동하러 나오는 사람들도 낯설게 바라봤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보는 기분으로(사실 그렇기도 하고). 그렇게 바라본 서울은 내 머릿속에 들어있던 이미지에 비해 푸르른 느낌이었다. 다른 나라에 살던 사람들이 서울에 여행 와서 서울을 바라보면 이런 기분일까.

혼자 여행을 하고 돌아올 때면 일상도 여행하는 기분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하곤 했다. 길가에 피어있는 작은 꽃 하나를 보면서도 어쩐지 새롭고 설레고, 다시는 볼 일이 없을 낯선 사람들과 미소 지으며 인사하고, 떨려하면서도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말을 묻고, 댓가도 이유도 없는 호의에 감사하며 매일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지금 여기에 한껏 집중하며 살 수 있다면- 하고 말이다. 내가 일상이라고 여기는 곳으로 다시 돌아오면 까맣게 잊곤 하던 감각이었는데, 어쩐지 오늘 아침은 조금 그런 느낌이었다.

잠실철교를 건널 때면 늘 지하철이 내 옆을 지난다. 그 지하철 지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너의 이름은' 개봉 이후 그의 인터뷰를 보고 좀 실망하긴 했지만, 여전히 '초속 5cm'의 그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 날씨는 맑고 벚꽃은 예쁘게 떨어지는데 스쳐지나간 방금 그 사람의 뒷모습에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시야를 가리며 들어오는 전철, 또 반대방향으로 지나가는 전철,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1분 여의 시간을 기다려 마침내 마주본 반대편은 텅 비어있고, 조금 쓸쓸하지만 그렇게까지 애타지는 않는 그런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돌려서 다시 일상으로 걸어들어가는 그 장면. 잠실철교를 건널 때 만나는 2호선은 그때 주인공이 서있던 곳만큼이나 전철과의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꼭 그 애니메이션 속에서 지나가는 전철처럼 느껴진다.

자전거로 잠실철교를 건너다닌 뒤로는 2호선을 탈 때 잠실나루역 방향으로 잠실철교를 건너갈 때마다 전철 안에서 밖으로 자전거도로와 자전거타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한다. 저기로 내가 지나가는구나, 하고. 그것도 재밌는 경험이었다.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너와 너의 눈에 비치는 나는 이렇게나 다르겠지,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일상 > 2020~20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추 정도야  (0) 2020.06.27
생일  (0) 2020.06.23
6월 14일 일기  (0) 2020.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