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돌아온 서울에서의 첫 일자리

참참. 2020. 1. 19. 04:58

다 끝나가던 2019년과 함께 내 귀촌생활도 끝이 났다. 다시 서울로 돌아와 나름대로 구직활동을 했는데 풀타임으로 일하는 곳은 콜센터 제외하고는 다 떨어지고, 그나마 일하러 오라고 연락온 곳이 집에서 멀지 않은 다이소였다. 하루 3시간 파트타임, 소위 말하는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집에서 가까운 데다 아침 10시 전에 퇴근하는, 아침에만 잠깐 하는 일자리라서 일을 하면서 구직활동이나 다른 걸 배우는 일도 얼마든지 병행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알바몬 어플로 간단하게 지원했던 것 같은데, 채용 확인도 문자로 간단하게 왔다.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냐는 문자에 내일부터 된다고 했더니, 내일 아침부터 나와달라는 문자 답장이 왔고, 그게 거의 전부였다. 면접은커녕 절차라고 할만한 게 전혀 없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월급이 만근시 세전 94만원이고, 4대보험에 가입할 거고 근로계약서도 쓸 거라는 점만은 명확히 해주셨다. 다이소에서 직접고용하는 게 아니라 파견업체와 계약하고 실제 일은 다이소에서 하는 거였다. 파견업체 사람은 문자로만 얘기해봤지 얼굴도 모르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근로계약서 소식이 없기에 문자를 보냈더니, 다음날 카톡으로 전자계약서가 왔다. 이젠 근로계약서도 카톡으로 쓰는 시대다.

출근 첫날엔 5분 정도 일찍 도착했더니, 직원 한 분만 딸랑 계셨다. 딱 6시 50분이 되어서야 물류차가 들어왔고 같이 상하차 아르바이트하는 분도 오셨다. 정신없이 차에서 물건을 내려서 다이소 입구에 잔뜩 쌓아놓고 차를 보내고나서야 한숨 돌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같이 일하는 분은 알고보니 동갑인 데다 여러모로 상황도 비슷하고 잘 맞는 분이었다. 일은 3개월 정도 했다고 했다. 그러나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있었으니 그분이 월말까지만 하고 그만둔다는 것이었다. 그날이 27일이었다. 이제 막 일 시작한 초짜가 며칠 뒤엔 혼자 해야하고, 또 초짜를 받아서 초짜 둘이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암담했다. 좀만 더 하시면 안되겠냐했는데, 무릎이 워낙 안 좋으셔서 수술도 하신 적이 있다고 하니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4일 만에 동료를 잃고 혼자 일을 하게 됐는데, 혼자한다고 해도 당연히 두 사람 몫을 혼자하는 건 아니었다. 직원분들이 그만큼 더 일을 해주셔서, 사실 내가 하는 일만 놓고 보면 둘이 할 때와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총 5개 층으로 되어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지하에는 설치되어있지 않아서 지하 1층 주방용품들을 계단으로 내리는 게 가장 고생스러운 부분 중 하나다. 혼자 할 때는 그 부분을 아예 직원분들이 도맡아서 해주셨다. 그래도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고 쉬는 시간없이 일해도 일이 다 안 끝난 채로 집에 가야하는 날이 많아서 곤란하긴 했다. 빨리 일할 사람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사람이 올지 모르니 걱정도 됐다. 잠깐 같이 했던 분이 내가 들어오기 전에 있던 사람은 맨날 지각하고 툭하면 말없이 결근해버려서 스트레스였다고 했고 직원분들도 다 내가 오기 전에 일하던 분 얘기만 나오면 학을 떼셨다.

한 일주일쯤 혼자 일했을 때 새로운 분이 오셨다. 역시나 사전에 아무 연락도 못 받았고 그냥 어느날 일을 하러 갔더니 모르는 남자분이 한분 서 계시기에 새로 오신 분이구나 했다. 어디서부터 일을 설명해줘야하나 했는데 알고보니 다른 지점에서 무려 8개월이나 같은 일을 하다가 옮겨오신 분이었다. 그쪽 지점과 건물모양과 점장님, 직원분들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보니 그런 부분만 알려드릴 게 있었고, 오히려 내가 배우는 게 많았다. 스물다섯살에 집이 나보다 먼데 지각도 안 하시고 일도 잘하시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동료였다. 이것저것 물어보다보니 교회에 다니시고 음악을 하는 분이란 것도 알게 됐다. 대학은 안 갔다고 했다. 군대는 갔다왔냐는 둥 이런저런 걸 내가 주로 물어봤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그 얘길 하니 그런 걸 도대체 왜 물어보냐고 핀잔을 듣기도 했다.

우리가 3시간동안 하는 일은 아침마다 들어오는 물건을 받아 해당하는 매대 앞에 갖다놓는 일인데 대략 이렇게 진행된다. 우선 차에서 기사님이 내려주는 박스를 직원분이 기계로 바코드를 찍어서 체크하고나면 그걸 매장 건물 앞에 차곡차곡 쌓는다. 우리 매장 물건을 다 내리고 차를 보내고나면 잔뜩 쌓여있는 박스를 1층으로 들여놓으면서 1층에 구역을 나누어서 물건을 층별로 분류해서 쌓는다. 지하로 내려갈 물건들은 계단 앞에, 4층 갈 물건들은 입구 바로 앞에, 2층 갈 물건들은 엘리베이터 옆쪽에다 쌓는 식이다. 그 작업이 끝나면 매장 문을 닫아놓고 물건들을 카트에 실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각 층으로 옮긴다. 해당 층에 도착하면 다시 박스에 쓰여있는 글자를 보고 그 물건이 층 내에서 어디있는지 확인한 다음, 해당 매대 앞에다가 내려놓는다. 물건 중에는 한 박스 단위로 들어오지 않고 '합포'라고 해서 하나의 박스에 여러가지 물건이 섞여서 들어오는 것도 있다. 그것들은 직원분들이 박스를 뜯어서 층별로 분류해주시면 그걸 다시 해당 층으로 가져가서, 플라스틱 빨간바구니 여러 개에다가 대충 비슷한 구역에 진열된 물건들끼리 다시 분류해서 해당 매대 앞에 갖다놓는다. 물건이 많을 때는 3시간동안 이 작업도 다 못할 때가 있다. 그밖에 매일 나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종이박스를 차곡차곡 접어서 잘 정리해두는 것도 주요업무 중 하나다. 이 일들이 빨리 끝날 때는 1층 청소와 계단 청소도 한다. 물건은 보통 160박스에서 260박스 정도 들어온다.

사실 평생 몸쓰는 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고 체격도 작은 편이라 아직 몸이 좀 힘들긴 하지만, 하루에 3시간 정도밖에 안하고 다들 하나씩 천천히 옮기라고 배려해주시는 편이라 할만하다. 노동과 운동은 다르지만 그래도 몸을 움직이니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갔다오면 피곤해서 낮잠을 자는 경우가 많고 밤에도 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하긴 하지만 그래도 10시부터 또 하루를 다른 일로 쓸 수 있으니 그것도 좋다. 게다가 학원강사와는 달리 일 끝나고나서 수업준비라든가 하는 일로 집에서 고민하거나 추가로 해야하는 일이 없다. 그냥 끝나면 끝이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지 않은 게 육체노동의 장점인 것 같다. 심지어 강릉에서 학원일 할 때보다 돈도 더 번다. 워낙 수강생이 적은 강사여서 거기서도 하루 2시간 정도밖에 일을 안했다보니 그렇게 됐다. 이 일만으로는 서울에서의 생활비를 다 감당할 수는 없으니 결국은 풀타임 일자리를 구하거나 다른 병행할 일을 찾아야겠지만 프로그래밍 배우면서 꽤나 만족스럽게 하고 있는 일이다. 올해는 다치지 않고 쭉 하면서 공부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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