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글쓰기/귀농귀촌 이야기

작은책18.3월) "전수 좋지?" "전수 좋다~!"

참참. 2018. 3. 6. 11:26

 

"전수 좋지?" "전수 좋다~!"

 

자연농 배우는 참참

 

학교 다닐 때 겨울방학하던 기분으로 맞이한 첫 농한기도 어느새 끝이 보인다둘레의 농부님은 벌써 하우스에 고추 씨앗을 넣었다.고추 모종 키우기를 1월부터 시작하는 것이다어쩐지 한 것도 없는데 겨울이 다 지나간 것 같아서 벌써 아쉽다꼭 애써 뭔가를 해내지 않아도 괜찮지만 부지런히 배우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춥다며 웅크리고 시간을 보내는 나와 달리 짝꿍은 하고 싶은 일이 잔뜩 있다그 중 하나가 '유랑농악단'이다작년에도 바쁜 와중에 매주 일요일마다 서울까지 가서 유랑농악학교를 다녔다나는 짝꿍의 졸업발표회에 구경 갔다가 처음 인연을 맺었다그게 다였는데내가 동아리에서 장구를 쳐봤다는 걸 알고 있는 짝꿍이 겨울전수에 함께 가자고 했다긴 67멀고 먼 해남아직 낯선 사람들에 만만찮은 비용도 있어서 꽤나 망설였는데이제보니 안 갔으면 참말 후회할 뻔 했다.

출발하는 날엔 어마어마한 추위가 몰아닥쳤다숙소인 해남생태문화학교에 도착해보니 보일러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았다방도 부엌도 오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했다그 추위를 견디며 사람을 불러 보일러를 고치고 부엌과 방을 청소하는 데만도 기진맥진했다전수를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는 '고사'도 다음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멀리까지 온 피로에 낯설고 추운 데서 자느라 다들 가뿐한 몸은 아니었을텐데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전수를 시작했다고사도 지냈고 아침부터 당번을 정해 밥도 직접 차려 먹으며 오전부터 가락을 배웠다유랑농악단이 전수하는 농악은 '해남 산정군고'줄여서 해남군고라 부르는데다른 지역에서 보통 '임실필봉농악'이나 '진안중평굿'과 같이 지역 이름 뒤에 농악이나 굿을 붙여 부르는 것과 다르게 '군고'라 한다이는 그 역사가 군악에 있음을 보여준다거슬러 올라가면 해남군고는 미황사 군고를 산정마을에서 계승한 것이고 미황사 군고는 임진왜란 당시 승군(僧軍)이 치던 풍물에 기원을 두고 있다 한다.

해남군고 보존회의 일명 '필수샘'과 '구슬샘두 분께서 유랑농악단에 해남군고를 가르쳐주시는데인연을 맺은 지가 벌써 8년째다.큰 전수관까지 갖추고 있는 지역농악도 있지만때마다 굿을 하던 문화가 사라져가면서 많은 마을 농악들이 점점 잊히고 있다해남군고도 20년 전까지는 고등학생대학생들에게도 전수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매년 꼬박꼬박 전수를 받으러 오는 외부(?) 풍물패가 유랑농악단밖에 없다고 한다.

풍물패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전수도 여러번 가봤지만 여긴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밥 해먹고 악기 치면서 즐거운 건 비슷하다그렇지만 선배와 후배사부와 제자라는 권위에서 생기는 긴장감같은 게 없었다연습의 양이나 강도도 내 기준에서는 느슨한 편이었다스무 살스물 한 살 대학생들끼리 빡빡하게 연습해서 단기간에 기술적으로 성장시키는 전수에 익숙하다보니 처음엔 좀 어색했다일정도 자주 바뀌고 아침 7시에 일어나 하기로 한 요가는 한번도 못했다이사람저사람이 제안한 하고싶은 것들은 엄청 많아서 전수 기간 내에 소화할 수 없을 정도였다이벤트나 프로그램으로 보면 어떤 전수보다 더 바쁜 느낌이었다.

겪어보니 이건 이것대로 참 좋았다잘 치고 싶은 욕심잘해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아직도 여전하지만 선생님들은 그게 고수가 아니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한결같이 말씀하신다말만 그런 게 아니라 그 마음이 막 느껴진다연습하는 데 가락 하나 치고 다음 가락 이야기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샛길로 빠져서 전국 팔도에 조선시대까지 다녀왔다한번은 '하나둘셋둘둘셋셋둘셋넷둘셋'박자만 세면 가락같은 건 첫 박 정도만 치기로 하고 나머지는 아무데나 치고 싶은 데 쳐도 상관없는 거라며 다 같이 빙글빙글 돌면서 한참을 악기는 치는둥 마는둥하며 춤만 추게 하셨다나중엔 불까지 끄고 다같이 박자에흐름에분위기에 몸을 맡겼다.

그렇다고 연습이 소홀한 건 아니었다난 쉬울 줄 알았는데 그간 안해서 몸도 다 굳은 데다 1채부터 12채까지 새로운 가락을 외우는 것만 해도 따라가기 벅찼다마지막날 발표회 그림이 그려지자 연습이 더욱 눈에 띄게 앞으로 나아갔다발표회 때는 다들 헷갈리던 가락도 척척 치고 연습 때보다 더 잘하는게말로만 듣던 실전에 강한 사람들이었다공연때 틀릴까 전전긍긍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둘러보며 웃으며 칠 수 있어야하는데 이번에 장구 처음 쳐봤다는 분이 나보다 더 잘 즐긴 것 같다.

굿이란 게 뭘까그동안 굿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실력에 대한 고민사람과 관계의 고민은 있어도 굿 자체는 내게는 그저 공연을 하고 함께 즐기는 음악으로써의놀이로써의 풍물에 가까웠다이번 전수와 유랑농악단에서 배운 굿은 훨씬 더 심오하면서도 일상적인 어떤 것이었다선생님은 이 전통문화의 의미해남군고에 전해오는 도둑잽이굿의 의미에 대해 오래 고민해오신 이야기들을 나누어주셨다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이제 내게 굿이란 건 음악이고 놀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께 감사하는 어떤 의식이자 서로의 안녕을 비는 어떤 안부인사의 느낌조차 나는 것이 됐다아닌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은 '어디 가서 누구 굿해줄까?'같은 질문을 다정하게 주고 받는다.

그 다정함이야말로 내 짧은 유랑농악단 경험을 한마디로 나타낼 수 있는 말이 아닐까싶다춥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여기저기 아프면서도 서로를 챙기는 다정한 마음들이 넘쳐나서 곁에만 있어도 행복했던 날들이었다언젠가 나는 나중에 다정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요즈음의 나는 다정한 사람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유랑농악단 덕에 잊고 있던 다정함을 조금 되찾은 기분이다유랑농악단은 서로에게만 다정한 게 아니라 그동안 4대강 싸움강정콜트콜텍밀양백남기님 농성장촛불집회 등 여러 곳에서 그 다정한 마음유쾌한 작당흥겨운 풍물소리로 함께해왔다이 참 좋은 전수를 뭐라 더 표현할 길이 없어 유랑농악단 전수 유행어로 끝을 맺는다. "전수 좋지?" "전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