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글쓰기/귀농귀촌 이야기

작은책18.2월) 잠자는 미꾸라지 잡기

참참. 2018. 3. 6. 11:25

잠자는 미꾸라지 잡기

자연농 배우는 참참

 

나와 짝꿍이 다른 곳이 아닌 홍천으로 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개구리님의 자연농 배움터지구학교였다.지구학교는 개구리님이 자연농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2015년부터 시작한 모임이다한 달에 한 번씩 개구리님 논밭에 모여 자연농 농사가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직접 해보면서 배운다농사 방법뿐 아니라 자연농스러운 삶자연농의 철학에 대해서도 배우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지구에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겨울을 맞이하면서 지구학교에서 다 같이 추수감사제를 했다각자 올해 수확한 것이나 직접 만든 것들을 가져와 수확을 마친 논 위에 상을 차려놓고 고마움을 전했다논에서 함께 수확한 쌀은 물론개구리님이 올해 번역 출간하신 책과 소금쟁이님이 만든 우엉차도 상에 올렸다짝꿍이 빚은 막걸리도 한자리 차지했다우리 부부는 미야자와 겐지의 시에 가수 이내가 곡을 붙인 비에도 지지 않고라는 노래도 불렀다우리 노래가 끝나고도 도도님의 기타반주에 맞춰 이런저런 노래를 함께 불렀다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놀궁리와 곰 부부 덕에 더 흥이 났다점심은 뜨끈한 국물과 장작불에 찐 감자와 고구마를 먹었다.

나는 올해의 고천문(하늘에 아뢰는 글)을 쓰고 낭독하는 일도 맡았다고천문을 쓰면서 돌아보니 부족하고 게을렀음에도 얻은 게 많았음을 깨닫게 됐다분명 우리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았다내 생각에 올 봄은 너무 가물었고여름엔 비가 너무 많이 왔다그뿐인가 멸강나방이라는 처음 보는 벌레가 벼를 다 갉아먹기까지 했다우린 늘 온 동네에서 제일 늦게 작물을 심었고 풀에 둘러싸여 죽은 작물도 많았다다 키워놓고 언제 수확하는지 몰라 못 먹게 된 것도 있고고랑을 잘못 파놓아서 장마가 오고난 뒤엔 밭이 한 달은 물에 잠겨있다시피 했다.

그렇게 문제가 많았음에도 수박참외오크라땅콩바질고추고구마토란배추 등등 많은 것들을 거두어 먹었다거저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마운 마음이 절로 솟아났다정말로 농사는 사람이 짓는 게 아니었다저들이 그 자신의 생명력으로 절로 자라는 것이었다땅이 짓고 해가 짓고 비와 바람과 온갖 풀과 벌레들이 짓는 것이었다그렇게 바라보니 세상에 고맙지 않은 것이 없었다그런 마음으로 고천문을 읽었다그렇지만 이렇게 고마운 마음도 이틀만 지나면 잘 기억이 안 난다불안과 걱정이 더 익숙하다항상 삶에서 문제를 찾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어쩌면 그래서 우리가 추수감사제와 같은 의식을 만드는 것 아닐까이 고마움을 잊지 않게 1년에 한 번씩이라도 되새기고자 말이다.

추수감사제로 2017년 지구학교는 모두 끝이 났지만 개구리님이 계신 홍천 고음실마을로 삶터를 옮긴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번 겨울에도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기록해둔 것을 꺼내어 한 해 농사를 정리해보고 서로 이야기 나누었다작년 농사 정리한 걸 토대로 올해 농사 계획도 짜보고 마을에서 일어나는 소식들도 주고받는다혼자 있었으면 자꾸만 미루다 결국 흐지부지됐을지 모를 일을 함께하니 좋다당연히 농사 선배 개구리님과 함께한 모두의 조언도 들을 수 있다아직 좀 남은 겨울 농한기동안에는 공동체에 대한 공부도 함께하고 자연농하며 경제적으로 좀 더 자립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공부도 공부지만 농사일이 없는 겨울이 왔는데 어찌 놀지 않을 수 있으랴짝꿍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지난주에는 미꾸라지를 잡으러 갔다겨울에 논두렁같은 곳을 뒤지면 추워서 웅크리고 있는 미꾸라지들을 손쉽게 잡을 수 있다는 개구리님의 이야기를 듣고 벼르고 있던 터였다개구리와 소금쟁이의 딸 승비와 승비의 친구들도 함께했다논두렁에 장화를 신고 들어가서 족대를 가져다 대고 진흙바닥을 발로 들쑤신 다음 족대를 옆의 눈 덮인 얼음바닥에 뒤집었다진흙과 함께 나온 미꾸라지들을 집어서 통에다 잘 모았다생각보다 미꾸라지가 많지 않았다짝꿍은 미꾸라지와 함께 갑자기 진흙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벌레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다줬다.

꽤 긴 구간을 뒤졌는데도 미꾸라지가 얼마 없어서 논 옆에 물을 모아두는 연못으로 자리를 옮겼다얼음이 두껍게 얼어있어서 장작 패던 도끼로 얼음을 깼다깨져서 떠다니는 얼음을 삽으로 걷어내는데 벌써 미꾸라지가 딸려 올라왔다족대를 대고 삽으로 얼음 밑의 물과 진흙을 쑤셔서 꺼내니 이야진흙 속에 꿈틀대는 미꾸라지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난 장갑을 끼고도 손이 시렸는데 승비는 맨손으로 잘도 잡는다신이 나서 미꾸라지를 잡는 아이들의 꺄르르 웃는 소리가 없었으면 재미가 그 절반도 못 됐지 싶다.

잡은 미꾸라지는 추어탕을 해먹기로 했다다들 정확히 몰라서 좌충우돌 추어탕을 끓였다인터넷도 찾아보고 할머님의 말씀도 들어가며 그럭저럭 잘 해냈지만익힌 미꾸라지를 믹서로 갈아서 다시 넣는 과정에서 뼈를 따로 발라내지 않은 게 아쉬웠다뼈도 같이 갈았기 때문에 작은 조각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꼭꼭 씹지 않고 넘기다가는 뼛조각이 목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든 것이다결국 탕 안에 있는 뼛조각들을 체로 다시 걸러냈다뼈만 따로 떨어져있는 게 아니다보니 살도 같이 걸러졌다덕분에 추어탕이 좀 멀겋게 됐지만 다행히 국물 맛은 그대로였다건져낸 살과 뼈는 숟가락으로 퍼먹기도 하고 밀가루를 넣고 반죽해서 전도 부쳐 먹었다올겨울 몸보신 제대로 했다춥다고 웅크리고만 있던 몸도 움직이고 아이들과 재밌게 놀면서 맛난 음식까지 얻은 셈이 좋은 걸 이제야 알았다니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