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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라는 이름의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토로, 윤이형 단편집 <셋을 위한 왈츠>

참참. 2013. 5. 9. 17:00


* 이 글은 2008년에 쓴 글입니다.

http://blog.naver.com/kimjh620/20057106264



셋을 위한 왈츠

저자
윤이형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07-10-2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저주를 풀려면, 저주 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요!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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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라는 이름의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토로, 윤이형 단편집 <셋을 위한 왈츠>

 

“제 하루는 뚝 떼어내서 지구상의 육십억 인구 중 누구의 삶에 갖다 붙여도 표가 나지 않을 거예요.” 단편 「DJ 론리니스」에서 바로 그녀, DJ 론리니스가 하는 말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마치 구멍 난 풍선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듯 가슴 속에서부터 긴 바람이 뽑혀 나왔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공부해라’ 소리를 골초 담배 피우듯 들으며 초, 중,


고등학교와 입시학원을 졸업한다. 그러나 그 후엔 적당한 대학에서 고등학교 4학년이 되어 취직이라는 또 한 번의 입시를 향해 학점관리에 돌입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평범한 직장,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일도 평범한 노력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무한경쟁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이들처럼 그런 현실 속에서 익사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며, 적당한 성적표를 달고 터져라 뛰어대는 심장의 뜨거움을 느껴본 적 없이 지금껏 살아온 나였다. 그런 나였기 때문일까, 이 한 문장은 내게 심장 깊숙이 뚫고 들어오는 섬뜩한 칼날이었다.

여덟 작품 중 시작하며 인용한 「DJ 론리니스」에 대해서만 좀 더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DJ 스카이하이라는 ‘나’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부분과, DJ 론리니스가 되는 그녀의 내면에서 살아가는 어떤 존재라는 특이한 시점에서 서술되는 부분이 번갈아 나오며 진행된다.

처음은 ‘강빛나’라는 평범한 공기업 여직원이 디제잉을 배우고 싶다며 ‘나’를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그녀는 취미로 배우러 왔냐는 말에 진지한 표정으로 “아뇨. 죽기 전에 한번, 돼보고 싶어서요, DJ라는 거.”라고 대답한다.

첫 수업에서 ‘나’가 들려주는 음악들을 모두 알고 있던 그녀는, 그러나, “……그냥 아는 거예요. 좋아하는 건 아니죠.”, “뭘 좋아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또, “음악만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제 인생은 늘 그런 식이었어요.”라고 말한다.

수업이 계속 진행되던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술을 사달라고 한다. 술자리에서, 일렉트로니카라는 장르는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뻔한 음악이고, 그게 자신의 인생같이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처음 인용한 대사도 여기에서 나온다. 그리고 TV에서 뻔한 음악이라도 뻔하지 않게 틀면 다른 음악이 된다는 어느 DJ의 말을 듣고 해보려고 했지만, 역시 자신에게 정말로 좋아하는 것은 없다고, 이제 그만 두겠다고 선언한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음악을 지니고 있다는, 또 DJ가 턴테이블 두 대를 나란히 놓고 쓰는 이유는 “데크 하나에는 꿈을, 다른 하나에는 현실을 걸기 위해서.”라는 이야기와 “어느 누구도 원하는 대로 하나의 음악만 들으면서 살아갈 순 없”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은 이미 DJ예요, DJ 네임이 필요한 엄연한 DJ라고요.”, “자신의 음악과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야 해요.”, “찾게 되면 연락해요. 기다릴게요.”라는 말로 그녀를 보낸다.

그로부터 두 달 후 그녀에게서 온, 역시 다시 디제잉을 해보아야겠다는 전화를 받은 ‘나’는 흥분을 숨기지 못하고 지금 바로 만나자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약속장소로 나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다. 큰 부상을 입고 입원한 그녀는 끝내 심장박동이 멎는다. 그런데 잠시 후, 그녀의 심장박동이 갑자기 회복되면서 “나는,”, “DJ 론리니스예요.”라고 말하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이 책은 등단작인 단편 「검은 불가사리」외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윤이형 작가의 첫 책이다. 사실, 여기 실린 단편들은 상당히 기괴하다.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도 있고, 내 수준에서는 무겁고 우울하다는 것 외에는 뭐가 뭔지 잘 이해가 안 되는 작품도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아프고 괴로워하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만은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녀의 작품들은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자욱하게 깔린 감정들의 토로로 보였고, 지은이 스스로 견딜 수 없어 피를 토하듯 ‘울컥’하고 쏟아낸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읽는 내내 현대인의 ‘평범한 삶’이 내포하고 있는 그 고통으로 가득한 한 사람의 일기장을 은밀히 엿보는 듯 마음이 떨렸다.

우리나라 10대 여자, 20대, 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고 한다. 그들이 죽음으로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삶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무엇이 그토록 견딜 수 없었기에 남은 기회마저 던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들 중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이들도 많다. 심지어 요즈음 우리나라에선 연예인들마저 잇따라 자살해 이 문제가 사회의 이슈마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모두에게 개인의 사정이라는 것이 있겠지만,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에까지 이르게 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을 고통들을, 우리를 우울하고 아프게 만드는 그 이야기들을 이 한 권의 책에서 여럿, 피부 그대로 맞닿아볼 수 있었다.

한 문장, 한 문장에서 절절함이 느껴져 읽는 이의 마음까지 아프게 만드는 능력을 지닌 작가, 윤이형. 그래도 「DJ 론리니스」의 끝에서, 시끄러운 클럽 속에서도 다음번에 틀 다른 음악을 듣는 DJ의 능력으로 이미 흰 시트까지 덮인 그녀의 되살아난 심장박동을 잡아내는 DJ 스카이하이.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와 이제야 결정한 자신의 두 번째 이름을 결국은 속삭여내는 DJ 론리니스. 이를 보면 윤이형은 스스로 묘사한 그렇게나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곧 꺼질 듯한, 그러나 아직은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와도 같은, 희망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무래도 나는, 앞으로 계속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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