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글쓰기/토토협 [사적인 책읽기]

[사적인 책읽기] 네번째 책 편지, 《유럽의 교육》

참참. 2013. 6. 27. 07:33

* 이 글은 청년연대은행 토닥토닥협동조합(http://cafe.daum.net/ybank1030)에
토닥요일칼럼으로 매주 목요일 연재하는 글입니다.


나 역시 속았는데,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달리,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로맹 가리의 소설작품이다.



유럽의 교육

저자
로맹 가리 지음
출판사
책세상 | 2013-02-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중요한 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거장 로맹 가리의 탄생을 알린...
가격비교


최근 위와 같이 새로 나왔으나, 내가 읽은 것은




도서관에서 빌린 1982년도 판이었다.


이 책은 홍세화 선생님과 함께하는 '가장자리 협동조합'의 공부모임 1기에서 함께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름만 많이 들어본 로맹 가리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어보는 계기가 됐다.


폴란드의 한 소년이 전쟁을 피해 숨어있다가, 산 속에서 활동하는 빨치산 조직에 들어가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모임은 다가오는데 책을 늦게 읽기 시작해서, 사실 좀 급하게 허겁지겁 읽었다.


그런 가운데도 마음이 머무는 문장들이 있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사랑하고 먹고 따뜻하게 지내는 것뿐인데, 평화롭게 사랑하고, 굶어죽지 않고 얼어죽지 않는 것이 왜 이다지도 어려운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기가 제 나이 또래의 다른 소녀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했었다. 지구는 둥글고, 지구는 돈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로맹 가리, 《유럽의 교육》 중에서)

우리가 학교에서 중요하다며 매일 배우고 또 외웠던 그 많은 것들. 정말로 중요한 건 뭘까, 한번뿐인 이 삶을 더 다정하게 살아내기 위해서 더 배우고 간직해야할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 같다.


주인공인 소년 야네크는, 음악을 사랑한다. 그가 어느 독일인의 집에 들어가 권총으로 위협해서 피아노를 치게 하는 장면이 있다. 강제로 피아노를 치도록 협박을 하는데, 나중에는 그 피아노 선율에 깊이 빠져든 나머지, 연주가 끝나고도 한참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 독일인이 널 무장해제시킬 수도 있었다고 말할 때까지도. 둘은 서로 철천지 원수인 나라에 속해있었으나, 더 이상 '적'이 아니었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느꼈다. 참혹한 전쟁 속이기에 더더욱. 나중에 결국 이 독일인은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빨치산 부대의 공격을 받고, 야네크의 쏘지 말라는 다급한 외침도 뒤늦어, 결국 죽게 된다. 야네크는 죽어가는 그의 옆을, 홀로 지킨다. 음악을 함께 나눈 그가 곁에 있어서, 그의 마지막은 조금이나마 따뜻해졌을 거라고, 느꼈다.


지난 일요일 오후에 길담서원에 모여, 홍세화 선생님과 1기 모임에 참여한 가장자리 조합원들과 함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 속에 나오는 또 다른 인물, 도브란스키와 주인공 야네크가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모임을 시작했다. 거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혼자 읽고 덮었을 때는 전혀 떠오르지 않던 생각들도 많이 하게 됐고, 보이지 않던 무언가들이 책 속에서 나타나는 기분이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이 갖고 있는 삶의 경험들에 비추어서 책의 내용을 이해한 것들을 듣고 있노라면, 참 신기하고 재밌다.

모임을 통해서 특히 마지막 장면에 대해 곰곰 곱씹어보게 됐다. 도브란스키는 죽어가면서 야네크에게 자신이 쓰던 책을 마저 끝내달라고 부탁을 한다. 야네크는 처음에 거절하려 하지만, 결국 약속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트바르도브스키 소위는 주머니에 갖고 있던 그 작은 책을 꺼내 땅에, 개미들의 길에 놓았다. 그러나 개미들이 수많은 세월동안 다니던 길에서 개미들을 돌아가게 하려면 다른 것이 필요할 것 같았다. 개미들은 장애물 위로 기어 올랐고, 장애물도 개의치 않고 바쁜 걸음으로, 종이 위에 크고 검게 《유럽의 교육》이라고 쓰여진 그 <쓰라린> 글자들 위를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던 것이다. 개미들은 보잘 것 없는 잔가지들을 집요하게 끌고 갔다. 그들의 <길>로부터 그들을 빗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책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들보다 먼저 다른 수백만의 개미들이 따라갔고 또 수백만의 다른 개미들이 그어놓았던 그 <길>로부터.(중략) 투쟁하고, 기도하고, 희망을 갖고, 믿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람들이 고생하고 죽는 세상은 개미들이 고생하고 죽는 세상과 같은 것이다. 잔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이마에 땀을 흘리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보잘것없는 어린 가지 하나, 지푸라기 하나를, 끊임없이 더 멀리 끌고가는 것 만이 중요한 세상. 숨을 돌리거나 왜냐고 묻기 위해 멈추지 못한 채...<사람들과 나비들이...>(로맹 가리, 《유럽의 교육》 중에서)

트바르도브스키 소위가 바로 야네크다. 그는 개미들이 계속해서 따라가는 그 길에서 개미들을 벗어나게 하려면, 책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모임에서는 이야기하지 못했지만, 그 구절을 모임에서 다시 읽고 또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개미들을 다른 길로 돌아가게 하려면, 다른 길로 돌아가는 '개미'가 필요하다고. '그들보다 먼저 다른 수백만의 개미들이 따라갔고 또 수백만의 다른 개미들이 그어놓았던' 그 길에서 벗어나 다른 길로 가는 개미들이 있어야 한다고. 그러면 그 길을 따라오는 개미들이, 분명 생길 거라고. 그 길이 정말로 좋은 방향이라면, 언젠가 수백만의 개미들도 처음엔 소수의 길이었던, 그 새로운 길을 따라오게 될지 모른다고.


우리가 숨을 돌리거나 왜냐고 묻기 위해 바쁘게 가던 길도 종종 멈출 수 있는 사람들이길 바란다. 그럴 수 있게 해주는 공간과 모임, 인연들이 '가장자리'에서도, '토닥토닥협동조합'에서도 끊이지 않아서, 누군가들을 환영하며 맞이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