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글쓰기/토토협 [사적인 책읽기]

[사적인 책읽기] 세번째 책 편지,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참참. 2013. 6. 20. 11:57

* 이 글은 청년연대은행 토닥토닥협동조합(http://cafe.daum.net/ybank1030)에
토닥요일칼럼으로 매주 목요일 연재하는 글입니다.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저자
박준성, 안건모, 홍세화, 정태인, 하종강 지음
출판사
철수와영희 | 2007-09-18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80%의 보통 국민이 우리사회의 진정한 중심이 되기 위한 6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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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생일이다. 햐, 생일인데 칼럼 연재하는 날이라고 일어나자마자 어제 읽다 다 못 읽은 책을 펼쳐들고 열심히 읽었다.

이 책은 작은책에서 했던 강연 내용을 모아서 엮은 여섯 분의 강연집이다.

이임하, 안건모, 박준성, 홍세화, 정태인, 하종강 선생님의 이야기가 강연하는 말투 그대로 녹아있다. 책을 읽고 있는데, 강연을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을 정도다.


책에 실린 순서대로 간단히 살펴보면, 처음에는 박준성 선생님의 역사 이야기다.

최초의 고공 투쟁 농성을 한 여성노동자가 일제시대에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이런 역사들을 우리가 다 알고 있다면, 이 역사들을 학교에서도 배운다면,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지금과 같은 의식을 갖고 살아가진 않을 텐데. 안타깝다. 이런 역사들은 탄압과 무관심 속에 잊혀져가고 있다.

과거의 기억을 장악하는 자(세력)가 역사를 지배하고, 역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합니다. 노동자가 노동자 운동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정당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것이고, 역사에 발맞추어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배우는 것입니다.(박준성,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34쪽)

불과 십몇 년 전까지 서울 지하철 을지로입구역 부근 건물 벽에 있던 김홍도의 '타작도'를 사진으로 찍어놓으셨다. 그 사진이 책에도 실렸는데, 가관이다. 원래 김홍도의 타작도에는 일하는 농부들과 함께 자리에 누워 술 마시며 감독하는 지주가 있다. 그런데 그 사진에서 보이는 건물 벽의 타작도는 지주의 모습은 쏙 빠지고 일하는 농부들만 있는 반쪽짜리 그림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와 선전이 얼마나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무심코 지나가다 쳐다보는 건물 벽에 그려진 그림도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살아가면서 보고 듣는 수많은 글, 그림, 말 들이 내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지나 않은지 헤아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박준성,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31쪽)


더불어,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아이들이 마음대로 밖에 나가면 위험할까 방문을 밖에서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집에 불이 나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진 사건을 이야기하신다. 거기에 더해 체 게바라의 강연의 한 대목을 인용하셨다.

"지구상에 단 한 사람의 무고한 죽음에 대해서도 고통을 느낄 줄 아는 감성을 계발하고 자유의 깃발 아래 떨쳐 나설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대목 가운데서도 '감성을 계발' 해야 한다는 말이 지금까지도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머릿속의 지식은 현실에서 체험하고 느끼는 감성과 결합될 때만이 미래를 바꾸는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박준성,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53쪽)


두번째는 안건모 선생님이다. 안건모 선생님은 지금도 작은책 편집인이자 발행인으로 계속 일하고 계신다. 그 전에는 20년동안 시내버스를 운전하셨다. 안건모 선생님 강연의 제목은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다.

선생님이 쓰신 글을 읽어보면, 우선 재밌다. 잘 읽힌다. 직접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또 쉽게 쓰시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 속에 참 많은 것이 들어있다. 여기서 다른 분들의 글들을 많이 소개해주시는데, 그 글들도 다 그런 '살아있는' 글들이다.

어떤 글들은 읽으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특히, '엄마 타령'이라는 글에서 그 전까지의 자신은 다 사라지고, 오직 아기와 가족들의 필요에 따른 삶에 지친 이야기가 그랬다.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는데, 그 응급실에서 '이제 난 자유야, 애기 안 봐도 되고 집에 안 가도 돼'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라니,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했는지 그 마음이 다 전해졌다.

어떻게 하라고 하는 구체적인 주장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글을 읽는데, 그 경험들이 뭔가 울컥하게 한다. 그렇지, 이건 아니지, 하고. 그런 우리들 하나하나의 경험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살아있는 글쓰기가 참 필요하다.


이임하 선생님 이야기에서는 박준성 선생님 때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위에서도 이야기한 최초의 고공 투쟁 농성뿐 아니라 수도없이 많은 완전히 처음 듣는 파업과 투쟁의 역사들이 더 나왔다. 아니, 우리 역사에 이렇게 많은 노동운동과 특히 여성노동운동의 역사가 있었다니, 어찌 이걸 이리도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지? 일제시대뿐 아니라 60, 70년대의 운동들도 전혀 들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이럴 수가 있나? 무섭다는 생각마저 든다.

착한여성과 나쁜여성이라는 뿌리깊은 구분의 편견들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 요즘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라든가《이갈리아의 딸들》과 같은 여성주의 책들을 보면서 느꼈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충격적인 재인식이 여기서도 계속됐다.

1930년에 당대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의 좌담회에서는 생물학자의 말이라며 일단 딴 남성을 접한 여자에게는 그 신체의 혈관의 어느 군데엔가 그 남성의 피가 섞여 있지 않을 수 없다는 둥, 지금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버젓이 하고 있다. 그렇기에 초혼이 좋다는 건 과학적으로도 증거가 있다는 식이다. 어이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통념들도, 그 시절의 저런 말들과 큰 차이가 없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 엄청 많을지도 모른다.

잘 기록되지도 않고, 이야기되지 않는 여성들의 역사. 세상의 절반의 역사가 묻히고 있다.


정태인 선생님은 한미FTA를 집중분석해주셨다. 제일 무서운 이야기는 역시, 건강보험도 없어질 수 있다는 것과 무상의료 등 복지정책을 할 수 없는 체제로 가게 된다는 거였다. 투자자 - 국가제소권(ISD)이라는 건데, 이게 무시무시하다. 한국의 국가정책 때문에 미국의 기업이 손해를 봤다면, 국가를 상대로 고소를 할 수 있고, 한국 정부가 손해액을 배상해야 한다는 거다. 가령 미국의 보험회사가 우리나라에 진출을 해서 열심히 보험을 팔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공공정책으로 무상의료를 실시하면, 사람들이 이제 민간보험에 굳이 가입해서 돈을 낼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럼 미국 보험회사는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우리 정부는 막대한 손해액을 배상해줘야한다는 거다.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 무섭다. 아,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무서운 일만 많아지니 차라리 눈감고 귀막고 살아야할까. 이게 벌써 2007년도에 나온 책인데, FTA는 이미 기억의 저편으로 날아가버렸고, 게다가 그때 난 철부지 고등학생이었다.


홍세화 선생님은 프랑스 교육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기 존재를 배반하는 반노동자 의식에 대해 말씀하신다.

자신이 노동자이지만 노동자의 의식이 아닌 자본가의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엔 거의 대부분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어렸을 적부터 우리가 받는 교육이나 사회에서 받는 메시지가 오직 그런 것들뿐이다. 프랑스나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 이미 교과서에부터 노동조합의 의미와 단체교섭권같은 것들을 배우는데,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노동조합에 대해 입만 뻥끗했다가는 빨갱이 교사로 신고 당하고, 해직될 수 있는 무서운 세상이 아직도 펼쳐지고 있다. 오직 지배세력의 논리와 의식을 가르쳐야 '중립적'이고 '바른' 교사가 되는 것이 한국의 교육현실이다.

유명한 이야기지만 홍세화 선생님의 딸, 아들이 고등학생이던 시절 '나는 사민주의자'라고 했더니, '누나는 계량주의자야!' 하며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다고 한다. 벌써 그런 것들을 학교에서 배워 알고, 자신의 생각은 어떤 노선이 더 옳다고 생각하는지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인 것이다. 스물넷인 나도 아직 뭐가뭔지 모르겠는데, 부끄러울 따름이다.


이 선진국들의 노동교육은 마지막 하종강 선생님의 이야기에서도 계속 나온다. 그 나라들에서는 학생들이 노-사로 나뉘어 교섭을 하고 협상을 하며, 서명운동 전개에 항의문 작성, 플래카드와 벽보를 만들고 협약을 체결하는 등의 단체교섭을 직접 해보면서 배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조합 간부가 된 뒤에도 어디 가서 배울 데가 없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 과정에 사회 과목 시간에 1/3 정도의 비중으로 가르치는 것이 '단체교섭의 전략과 전술'이란다. 할 말이 없어진다.

우리나라 사람들 전교조 싫어하는 사람 참 많다. 공무원이 무슨 노조냐며 아직도 이런 소리하는 사람들도 많다. 프랑스에는 경찰도 노조가 있고 프랑스 경찰노조는 파업도 한단다. 

앞에서 박준성 선생님과 이임하 선생님의 이야기 때도 나왔지만, 역사 이야기가 또 나오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큰 독립운동인 3.1만세운동 이야기가 충격적이었다. 어쩜 그렇게 교묘하게 쏙 다 빠지고 역사를 써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까지 많은 노동자 파업과 투쟁이 있었고, 그것들과 독립운동이 절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거기서도 가장 끝까지 싸웠던 사람들이 노동자 대오로서 참가했던 분들이었다는 거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하셨던 분들이, 본인도 아니고 그 관련 가족분들이, 아직도 누가 찾아오면 잡으러 온 줄 알고 그런 사람 모른다고 한다는 거다. 아, 이러니 우리 역사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얼마나 왜곡이 되고 숨겨진 건지 파악조차 불가능할 듯하다.


이 책은 '철수와영희'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여긴 질 높은 사회과학 책이 많이 나온다. 현재 직원은 두 분이라고 들었다. 홍세화 선생님과 함께하는, 가장자리라고 하는 협동조합에서 공부모임을 하는데, '철수와영희'에서 지금 일하고 계신 박정훈 대표님도 거기서 알게 되었다. 이번주 일요일에 마지막 모임인데, 읽어가야하는 책은 아직 첫 장도 못 넘겨보았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