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3~2019

작은책 5월 강연 뒷이야기 - 오건호, '나도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다'

참참. 2013. 6. 6. 11:38

* 5월 23일 목요일, 월간 작은책에서 들은 강연의 뒷이야기입니다.


1월과 2월, 작은책 강연을 두 번 들어보았는데, 두 번 다 몹시 좋았다. 이제 꼬박꼬박 들으러 가야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그랬는데, 바로 일이 생겼다. 3, 4월달에 들었던 수업과 요일이 겹쳐 못 가게 된 것이다. 어찌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기다리던 5월, 드디어 요일이 겹치던 수업이 끝이 나서, 냉큼 달려갔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고등학생 때 처음 했다. 그 전까진 능력이 있으면 잘 살고, 능력도 없고 게으르면 못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과학고에 진학해 똑똑한 아이들 사이에서 성적을 받아보니, 이게 뭔가 싶더라. 그제서야 왜 공부를 해야하는 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사람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하는 의문은 가시질 않았다. 그렇게 처음으로 사회구조라는 것에 비판적인 시각이 생겼다.

그런 한편, 복지국가란 어떤 것이고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계속 무지했다. 막연히 덴마크라든가, 핀란드라든가하는 북유럽의 선진국들에선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하는 걸까하는 생각만 했다. 그건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낮아서 그런 거다. 비리와 부정부패가 많아서 그런 거다. 이런 단편적인 생각들만 이어졌다. 천만다행으로 취직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벌어서는 내가 살 집조차 갖기 어려운 현실이 기가 막히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돌아보면, 한번도 깊이 있게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왜 그랬는지 명쾌하고 구체적인 방법같은 건 없을 줄로만 믿었다.

오건호 선생님은 그렇게 막연하고 부정적이던 내 생각을 단박에 깨주셨다. 액수를 조목조목 따져서,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게 절대 아님을 보여주셨다. 우리들이 민간에 지출하고 있는 비싼 보험료의 일부만 더 국민건강보험료로 내면, 100만원 상한제가 실시될 수 있다니! 강연을 듣는 게 아니라 마치 마술을 보는 것 같았다. 복지국가로 가는 다섯 단계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니, 금세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설레기까지 했다. 현실은 2단계에서 막혀있다고 하셨지만.

내가 정말 세금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좀 충격이었다. 아직 세금을 내본 적도 없으니 몰라도 되는 줄 알았다. 어쩜 그렇게 철저하게 무지했는지 모르겠다. 우리 교육에서 노동과 세금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는 말씀에 고개를 깊이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뒤풀이도 즐거웠다. 가장 뜨거운 화제는 마흔 넘어 결혼하신 선생님의 비결이었지만, 복지국가 만들기처럼 명쾌한 해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선생님께서는, 결혼을 늦게 한 것이 보육복지 실현에 맞추어 아이들을 키우기 위한 계획이셨다고 한다. 하하하. 덧붙여서 앞으로 아이들 커가는 것에 맞추어 더더욱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지금 하는 일은 사실 다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있어서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셔서, 모두에게 웃음을 주셨다.

선생님 말씀대로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알아차리고, 자발적으로 우리가 이만큼씩 세금 더 낼 테니 복지를 하자고 말하는 때가 올까? 조세 도피처(피난처보다 적절한 단어라고 하신)도 철저하게 찾아내고, 세금이 투명하게 쓰인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어서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 날이 오면 나도 결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