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바라는 삶을 사는 이들

경산목수 이종우, <나무의 온도> / 나무와 함께 사는 마음으로 원목가구를 만들다

참참. 2013. 5. 9. 00:42



나무의 온도

저자
이종우 지음
출판사
마호 | 2013-02-22 출간
카테고리
취미/스포츠
책소개
나무가 내 삶에 들어왔다!원목 가구와 나무 소품이 있는 따뜻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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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함께 사는 마음으로.

출판사를 보고 책을 고르는 경우는 아직까지 잘 없는데, 이 책은 책을 낸 출판사 덕에 알게 된 책이다.

이 책을 만든 마호(MaHo, http://mahobooks.com/)라는 출판사는 1인 출판사인데, 잡지에서 인터뷰 기사를 보고 알게 되었다. 그 인터뷰에서 마호라는 이름을 잊을 수 없게 만들었던 한 마디가 있었다. 

"세상엔 그리 대단한 책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책을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그 마음이 무척 좋았다. 결과적으로, 블로그를 종종 들어가 보면서 마호에서 어떤 책을 만드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괜찮아, 나도 그런 날이 있어>라는 책도 한권 사서 보았다. 바느질과 일본 여행에 관한 책은 내 일상과 아무래도 동떨어져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선뜻 보게 되지가 않아서. 그러다 최근에 낸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 책도 내 일상에서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어쩐지 계속 생각이 났다. 제목도 참 마음에 들고, 나무로 만든 가구에 대해 호감이 있던 터라 기어코 펼쳐들게 되었다.


책을 펼치자 나무향이 났다. 기분 탓일까? 그냥 종이 냄새인데, 내가 너무 심취해서 왠지 모르게 나무향이라고 느낀 걸까? 옆에 있던 다른 책의 종이 냄새와 비교도 해보았다. 확실히 뭔가 다른 향이다. 종이 재질이 달라서인지 종이를 처리하는 화학약품같은 것이 달라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게는 나무향으로 느껴지는 냄새부터 마음에 들었다. 표지도 정갈하고 예쁜데, 안에 면지(표지와 책의 본문 종이 사이에 들어가는 색지)도 일관되게 일반적인 색지가 아닌 나무 느낌이 나는 갈색깔의 종이였다. 보통 면지는 두꺼운 색지로 앞뒤에 각각 두 장씩 들어가는데, 이 책은 특이하게 면지가 한 장씩 들어가 있고 일반적으로 쓰는 색지보다 얇은 느낌이 나는 종이를 썼다. 종이에 전문가는 아니라서 크라프트지가 맞는지 모르겠는데, 그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책의 모습부터 시작하여 책 전체에서 일관되게 나무가 느껴지는 듯해 무척 기분이 좋았다.


책을 읽는 내내 무척 기분을 좋게 만들었던 다른 하나는, 글 너머로 전해져오는 지은이의 마음이었다. 나무를 대하는 마음, 가구를 쓸 사람을 위하는 마음,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쓸 사람과 쓰일 상황을 생각하며 정성스레 나무를 다듬고, 가구를 만드는 그 마음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주문을 먼저 받아서 만들기에 더더욱 가능한 정성과 열정일 것이다. 아무래도,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최대한 빠르게 많이 만들어내는 것만이 중요한 상황에서는 이런 마음을 이어나가기가 어려우리란 생각이 든다.


"오더 메이드한 원목 가구를 받았을 때 가구에 옹이가 있다면 '보기 싫은 옹이'보다는 '이 자리에 나뭇가지가 있던 나무로 만들었구나' 하고 생각하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가구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49)

옹이는 나무에서 가지가 뻗어 나올 때 생기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무늬인데, 사람들이 썩은 부분이라거나 옹이가 커진다거나 하는 오해를 해서 안타깝다며, 위와 같은 문장을 쓰셨다. 나무를 대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옹이에 대해서 별로 좋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듣고보니 예쁜 무늬로 보인다. 참 이상한 사람 마음이다. 옹이는 그대로 있는데, 글 몇 줄 읽었다고 이렇게 다르게 보일 수가 있나.


"나무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아 비슷한 나무는 있지만 같은 나무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40)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인데,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나무같은 건 다 똑같다는 식으로 느꼈던 것 같다. 사람도 보면 일란성 쌍둥이도 다른 사람인데, 나무도 당연히 그러리라. 나무들의 그 차이를 느끼는 사람이 만든 가구라면, 아름다운 가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아름답게 만든 가구는, 쓰는 사람이 아름답게 씀으로써 그 멋을 더한다. 직접적으로 그런 문장이 쓰여있지는 않지만, 지은이가 하는 말들에서 원목가구는 쓰는 사람의 손을 타는 세월들을 통해 진정 완성되어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딸이 시집을 갈 때 물려줄 수 있는 그런 가구가 좋은 가구라고 하신다. 책에는 원목가구를 고를 때, 쓸 때, 또 쓰다가 흠집같은 것이 났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갖가지 이야기도 풀어놓으셨다. 전문성과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 사람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여기서도 보인다.

 

글을 쓸 때 좋은 문장이란,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문장, 말로 옮겼을 때 자연스러운, 운율이 맞는 문장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아직 쓰다보면 문장이 길어지고 부자연스러워지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 문장이 참 소박하다. 몇몇 장면(소설도 아닌데 장면이라니!)에서는 마치 옆에서 누가 이야기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체가 다 그렇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몇 번 그런 느낌을 확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별로 없는데, 내가 그만큼 즐겁게 읽다보니 그리 느낀 것인지, 지은이께서 잘 쓰셔서 그런 것인지, 편집장 님께서 의지를 가지고 지은이와 문장을 잘 매만지신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참 좋은 느낌이었다.

 

덧붙여 지은이의 아내 분께서 책에 있는 사진들을 찍어주셨다고 하는데, 사진들이 참 예쁘다. 사진 속 원목가구들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이 책 읽으면서 계속 원목가구와 함께 생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각칼 이야기를 읽을 때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나무로 깎아서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막 느껴졌다. 얼마 길지도 않은 책인데, 내 삶과는 영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목수라든가 목공에 대해 많은 걸 알고 느끼게 됐다. 무엇보다, 뒤에 나무 소품들을 직접 제작해볼 수 있게 친절한 설명들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캔들 홀더, 메모지 홀더, 도마, 숟가락, 젓가락은 정말 만들어보고 싶어지더라. 나무의 온도를 손끝과 온 감각을 통해 느끼면서.


* 2013년 5월 4일에 네이버블로그에 썼던 글입니다.

* http://blog.naver.com/kimjh620/20187027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