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두려움

참참. 2021. 12. 17. 13:34

 

얼마 전 상담에서 "어리석게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라는 문장을 완성시키라는 주문을 받았으나,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근데 최근에 내가 회사 화장실 문에 손을 데려고할 때마다 움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사 화장실 문은 전에 다니던 회사의 화장실 문과 똑같이 생겼는데, 전직장에서 나만 유독 정전기가 심하게 올라서 문에 닿을 때마다 찌릿찌릿했다. 말할 것도 없이 겨울이 제일 심했으나 겨울에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나중에는 정전기를 흡수해주는 키홀더를 사서 갖고 다녔다.( 이런 제품이다. https://shopping.interpark.com/product/productInfo.do?prdNo=6135345345&uaTp=1&&msid1=web&msid2=minis_prd&msid3=minis_seller )

지금 회사 문에서는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없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종종 옷에서 정전기가 일어나거나 하긴 하지만 화장실 문과는 상관이 없다. 그런데도 한 2주 전부터 갑자기 회사 화장실 문을 만지려고 할 때마다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아닌 걸 머리로는 아는데,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가면서 주저하게 된다.

살면 살수록 트라우마가 별 게 아니라 이런 게 다 일종의 트라우마라는 걸 깨닫는다.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 문 열 때 오르는 정전기 몇 달 겪었다고 1년이 지난 지금 전혀 다른 장소에서 아직까지도 이러고 있는데, 타인과 관계 맺는 과정에서 생긴 트라우마나 습관들은 어떨까. 알지도 못하는 사이 경직되고, 방어기제가 튀어나오고, 정신을 차려보면 이상한 소리를 내뱉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잠시 잊고 있다가도 어떤 식으로든 그 상황에서 이전의 트라우마 상황과 비슷하게 여겨지는 무언가가 포착되는 순간, 몸과 마음이 순식간에 그때로 동기화된다.

새로운 생각패턴을 만드는 것은 뇌에 새로운 회로를 그려넣는 것, 이전에 그려져 있는 회로들로 흘러가는 것에 저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길을 더 크게 더 잘 만들어 그곳으로 흘려보내는 전략이 더 효과적이라고,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상담선생님이 해주신 말씀 중에도 이런 맥락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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