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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한 외로운 수학 천재 이야기>,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참참. 2013. 5. 9. 18:43


* 이 글은 2008년 4월에 쓴 글입니다.

http://blog.naver.com/kimjh620/20087293471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한 외로운 수학 천재 이야기

저자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지음
출판사
생각의나무 | 2006-01-10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수학을 사랑하고 수학적 논리에 명석하였으며 그리고 결코 좌절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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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라는 생물에 관하여-

 

'수학자'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많은 이들이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천재', '어딘가 다른 사람들과는 잘 못 어울리는 혼자 생각만 하는 사람', '머리는 좋으나 괴상한 사람' 정도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익히 알려진 수학자 중 여럿이 그랬다는 점이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또한, 학창시절 수학을 어려워했던 기억과 여전히 수식만 보면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사실도 단단히 한몫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랬다면 과연 수학자들이 정말로 그럴까? 한 인간으로서의 수학자를 그린 이 이야기 한 가닥이 그 의문을 푸는데 분명히 도움을 줄 것이다.

20세기 초반 즈음의 수학사에 살짝 끼어들어 간 우리의 주인공 페트로스 파파크리스토스는 어릴 때부터 두각을 드러낸 총명한 머리의 소유자, 즉 천재다. 그는 아버지의 후원에 힘입어 그 재능을 활짝 펼치지만, 첫사랑의 여인 이졸데의 배신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우리 주인공은 세계적인 난제를 증명해 그녀를 후회하게 하겠다는 생각으로 악명높은 '골드바흐의 추측'에 도전하게 된다. 게다가 그 영광을 혼자 차지하려 하디와 같은 뛰어난 수학자의 공동연구 제의조차 거절하고, 중간 연구결과도 발표를 꺼린다.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에 입가에 살며시 미소까지 머금게 되는 대목이다.

동시에 삼촌인 페트로스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나'도 수학자의 길을 고민하다가 여러 사건과 심리의 변화로 결국 포기한다는 내용이 맞물리는데, 한 선배 수학자로서 수학에 관심을 보이는 조카와의 대화나 수학자를 바라보는 그의 태도를 보여주어 인상깊다.

다시 페트로스의 인생이야기로 돌아오면, 그는 '나'의 아버지를 비롯한 형제들로부터 '절대 본받아서는 안 될 인간', '재능을 낭비하는 죄악을 범한 인간'으로 취급받는데, 이는 그가 결국 '골드바흐의 추측'을 증명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연구를 포기하고 나서 체스나 즐기며 생활하는 말년의 페트로스와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어떤 수학적 공리체계 내에서는 반드시 증명 불가능한 명제가 존재한다는 정리) 때문에 증명을 포기했다는 삼촌을 비겁하게 여긴다. 결국 '나'는 그에게 괴델을 탓하지 말고 당당히 실패와 두려움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이후 며칠간 다시 연구를 하며 이상한 행동을 보이더니 갑자기 증인이 될 수학자를 데리고 빨리 오라는 전화만 남긴 채 죽는다.

페르마(책의 여백이 부족해 증명을 쓰지 못했다는 수학자)를 연상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좀 당황스러웠지만 전체적으로 참 그럴법한 이야기라는 느낌이다. 수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거기에 몰두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평생의 연구주제를 결정한 계기가 첫사랑의 배신 때문이고, 영예의 욕심으로 다른 수학자들과 교류를 끊는 그런 모습이, 정말 수학자다우면서 동시에 참 인간적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이 꼭 편견을 비판하고 수학자의 인간적인 면만 비추려는 것은 아니다. 배경에 깔린 실존한 천재 수학자들의 우울한 생애(요절한 라마누잔, 미쳐버린 괴델, 자살한 튜링 등)까지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등장인물들이 세 번도 넘게 내뱉는 '수학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다.'라는 말에 이르면 수학자와 일반인 사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느낄 정도다. 수학에는 스포츠와 예술처럼 오로지 1등만 의미가 있고, 재능이 없으면 화려한 범재는 될 수 있을지언정 결국 천재를 이길 수는 없다고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 맞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도전으로 절망할 권리가 있다.'라는 문장은 가슴에 와 닿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콕 박혔다.

결국, 나는 수학을 아름답다고 느끼고, 일반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추구한다고 해서 수학자를 이상하게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모차르트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그 역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명곡들을 '뽑아내던' 천재였으나 모차르트를 생각할 때 페르마나 가우스를 떠올릴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이는 단지 음악의 아름다움은 귀와 감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데 반해 수학의 아름다움은 직접 그 속으로 파고들어가 머리를 능동적으로 이용해 그것들을 소화시킨 후에야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혹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우는, 수학이라기보다는 산수인 것들에 지쳐서 수학을 제대로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에는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사고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그리고 그들이 다수와 '다르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