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글쓰기/귀농귀촌 이야기

세븐일레븐에서 CU로

참참. 2018. 6. 3. 16:30

세븐일레븐에서 CU

 

자연농 배우는 참참

 

아르바이트 이야기냐고? 아니다. 집 얘기다. 우리는 지금 세븐일레븐 2층 원룸에 살고 있다. 서울에서 홍천으로 올 때 우여곡절 끝에 얻은 것이 이 열 평 원룸이다. 서울보다 싸긴 해도 그곳의 여느 원룸처럼 월세로 살고 있다. 처음에는 길어야 네다섯 달 지낼 임시 거처로 선택한 원룸이었다. 그게 어느새 1년이 넘었다. 다른 계획이 틀어지다 보니 그렇게 됐다. 처음 세웠던 계획이 이래저래 바뀌는 과정에서 그냥 계속 살게 된 거다. 그러다 최근에야 어디 전세라도 들어가면 방이라도 하나 더 생기고 월세도 좀 아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원래의 계획에 얽매이지 않고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서울에서도 찾기 힘든 전셋집이 이 동네에 있느냐, 우리가 가진 돈으로 전세를 들어갈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지금 사는 집에서 멀지 않은 아주 오래된 빌라 하나가 떠올랐다. 처음 이사 올 때도 거기 전세가 싸다는 얘길 듣고 고민했던 기억이 났다. 그 빌라에 지금 나와 있는 전셋집은 없는지 알고 싶었다. 서울이었으면 부동산엘 갔겠지만 여기서는 가까운 곳에 부동산도 없고 멀리 있는 부동산까지 찾아가도 왠지 모를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언니네텃밭일을 도와드리러 갔을 때 이 문제에 대해 여쭤보았다.

그 빌라에 집이 나왔는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

거기 10X호에 반장님 사시는데 그분이 잘 아셔. 가서 문 두드리고 물어봐.”

?”

농담인 줄 알고 다시 물어봤는데 농담이 아니었다. 상상이 안 됐다.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이 빌라에 전셋집 나온 거 있냐고 물어본다니! 만약 서울 살 때 전혀 모르는 사람이 집에 찾아와 그런 걸 물어봤다면 꽤나 당황했을 것 같다. 결국 다른 방법이 없어 짝꿍을 앞세우고 그 집에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사람이 나오길 기다리며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입구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같은 동 위층에 사는 분이었다. 인사를 드리니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보시는데, 전혀 당황하거나 불쾌해하시는 것 같진 않았다. 그때 마침 반장님도 나오셨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였다. 오래 서 계시기는 힘들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하게 등장하신 아주머니와 집 문 안쪽에 계신 반장님의 가운데 서서 양쪽을 번갈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새가 됐다. 여차여차 사정을 설명했더니 아주머니께서 요즘은 전세는 거의 안 나오고 월세나 매매만 나온다면서,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나오면 금방 나가서 지금도 나와 있는 게 없다고 하셨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연스럽게 반장님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아주머니께서 반장님께 지금 나와 있는 집 없죠?’하고 다시 한번 물어 확인시켜 주셨다. 아주머니가 빠르게 이야기를 정리해주셔서 금방 빌라의 상황을 알게 됐다. 아쉬움을 삼키며 감사 인사를 하고 나왔다.

가까운 곳엔 달리 전세로 나올 만한 집이 없는 것 같아 포기하려던 때, 언니네텃밭에서 빌라 이야기할 때 여기선 집을 교차로로 많이들 구하니 교차로 광고를 찾아보라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교차로와 별로 친하지 않아 몰랐는데 요즘 교차로는 온라인으로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가 있었다. 홍천은 춘천교차로에서 함께 서비스하고 있었다. 부동산 광고로 들어가 지역을 설정하니 지금 사는 집과 비슷한 주소에 32평 전세가 딱 나와 있었다. 서울에서는 돈이 없어서 전세는 생각도 못 해봤는데 여긴 전세가 2천에 나왔다. 위치도 지금 사는 데와 가까우니 더 망설일 게 없었다. 바로 연락을 드려봤더니 우리 원룸 1층 세븐일레븐과 50m도 안 되는 거리에서 경쟁하고 있는 CU편의점 2층이었다. 심지어 지금 살고 계신 분도 뵌 적이 있는 분이었다. 작년 CU에서 잠깐 아르바이트할 때 뵈었던 신선식품 물류차 기사님이었던 거다. 그때도 체력이 달려 그만두고 싶으시다며 나한테도 CU 아르바이트보다 이걸 해보라며 차를 싸게 팔아주겠다고 날 설득했었다. 내가 마음이 없다면 할 만한 다른 젊은 사람이라도 소개해달라고 하셨는데 드디어 차를 팔고 그만두시게 되어서 집도 이사 가신단다.

내친김에 그날 바로 집을 보러 갔다. 집은 아무리 봐도 32평은 안 돼 보였다. 나중에 서류를 보니 역시나 20평대였다. 그래도 거실 겸 부엌에 방 2개가 따로 있으니 10평 원룸 사는 우리에겐 호사스러운 집이었다. 창도 컸다. 난방비가 좀 걱정이고 그 큰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군부대라는 게 아쉬웠지만, 이것저것 따져 봐도 워낙 조건이 좋아 이사를 결정했다. 부동산에서 계약하려는데 이번엔 중개사가 너무 덮어놓고 빨리빨리 계약을 하려했다. 심지어 계약금을 집주인이 아닌 전 세입자에게 입금하라는 듣도 보도 못한 특약까지 있었다. 우리 입장에선 전재산에 가까운 돈이라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울산에 있다는 건물주와 통화도 하고, 계약조건과 원칙을 따지느라 실랑이가 꽤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계약이 성사됐다.

5월 말 작년 3월부터 1년을 넘게 산 원룸과 작별하고 농사지으면서 늘어난 짐을 보관할 공간과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방까지 갖게 될 예정이다. 서울에서도 편의점과 이렇게 가까이 살아본 적이 없는데 홍천까지 와서 편의점 위에만 계속 사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다. 짝꿍도 우리는 편의점 위층을 못 벗어나는 거냐는 농담을 했다. 그래도 기대가 크다. 서울에선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전세, 버스가 한 시간에 한두 대뿐인 여기에서도 오래된 건물이니 가능했다. 아직도 우리 땅과 우리 집이 아니라 얼마나 살지 모르는 곳이라는 점이 못내 아쉽지만, 돈 버는 일 적게 하고 싶은 우리가 매달 빠져나가는 돈 없이 그 넓은 집에 살 수 있게 된 게 어디냐. 벌써 이웃들 불러 집들이할 계획을 짠다.


* 월간 작은책 201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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