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다 쏟아진 폭우에 양말과 바지가 다 젖고서도, 사무실에 있는 게 어제 일요일 집에서 혼자 보내던 시간보다 더 나았다. 주어진 일, 주의를 기울일 일이 있고, 대부분 일 얘기지만 어쨌거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그 시간들이. 혼자 있으면 끊임없이 내가 입힌 상처, 내가 저지른 실수, 나의 못난 점, 누군가가 나에게 한 실망들만 떠오르는 이 시간도, 어떻게든 또, 지나고야 말겠지.
머리로는 그걸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런 시간들.
건강한 마음이란, 뭘까. 건강한 삶이란, 어떤 삶일까. 나를 사랑하고 나를 돌보는 일은 여전히 어렵고, 그런 주제에 남을 사랑하고 남을 돌보고 싶다고 나섰던 건 무슨 만용이었을까.
너무 외로워서 누군가가 날 사랑해주기만 한다면, 나도 그 사람을 몹시 사랑할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내 맘은 내맘같지 않았다. 하긴, 언제는 내 맘이 내맘같았던 때가 있었던가.
망설이다 순간의 진심을 시간 속에 흘려보내지 않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는 너무나 성급하고 불안정하고 어딘가 망가져있는 것만 같다. 많은 에세이와 소설에서 망가져있다는 기분에 대해 읽어봤으나 공감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살면 살수록 돌이킬 수 없는 실수들만 쌓아가고 있고, 나는 더이상 내가 바랐던 그런 사람은 아니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은 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나를 좀먹는다. 그럴 때마다 애써 내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면 뭐라고 말해줄까. 내 가장 친한 친구가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다면, 이런 말을 한다면 나는 뭐라고 위로해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누구에게도 상처받기도 상처주기도 싫어서, 사람과 만나고 관계맺는 게 너무 피곤해서 혼자가 편하다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것도 이제야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나빴으니까, 누구에게 위로해달라고 하기도 스스로가 역겨워지는 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으니까 앞으론 조금 더 낫게 살아보자고 애써 마음을 다잡는 밤. 밖에는 잠잠해졌던 비가 또 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