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글쓰기/귀농귀촌 이야기

그 많다던 시골 빈집들은 다 어디로 갔나

참참. 2018. 5. 3. 13:57


* 제가 오마이뉴스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25360


▲ 아쉬움으로 떠나보낸 신혼집 서울에서 어렵게 구한 신혼집을 공들여 꾸몄는데 오래 살지 못해서 아쉬웠다.
ⓒ 이파람


홍천으로 가자고 마음먹었을 때는 시골이니만큼 우리가 살 빈집 하나 정도는 금방 구할 줄 알았다. 웬걸, 마을주민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수소문을 했는데도 마땅한 집이 없었다. 서울에서도 집구하기가 참 어려웠지만 그래도 부동산에 가서 가격을 얘기하면 뭔가 집을 보여주긴 했다. 여기는 집 자체가 별로 없었다. 부동산에도 부탁을 해두었지만 아무래도 시골 부동산에서 월세나 전세를 구하는 손님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빌려서 농사를 짓기로 한 모래무지네 밭에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집을 찾아봤다. 마침 밭 바로 옆에 부엌 있고 방 한 칸이 딸린 조그마한 조립식 건물이 하나 있었다. 지구학교 다니면서 슬쩍 보니 매번 사람이 없었다. 아무리 봐도 비어있는 집 같아서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란 개구리님께 부탁을 드려 주인을 찾아보았다. 서울의 역세권처럼 여기선 농사짓는 밭에서 가까운 게 최고다. 우리 생각엔 어차피 빈 집이니 우리가 월세나 연세’(시골에서 1년 단위로 임대료를 드리는 것으로 월세 1년 치를 한꺼번에 드린다고 이해할 수도 있는데 보통 월세보다 저렴한 편이다)라도 좀 드린다면 서로 좋은 일이 아닐까싶어 기대를 꽤 했다. 하지만 소금쟁이님이 물어봐주시고 여의치 않다는 소식을 전해오셨다. 거기 살던 어르신이 몸이 안 좋아 요양원에 계시는데 나아지면 다시 오실 수도 있어 집을 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뒤로 집을 어떻게 구해야할지 감도 못 잡고 있던 1월 즈음 개구리님이 몇 해째 비어있는 집을 하나 소개시켜주셨다. 집 옆에 조그만 텃밭도 딸려있고 뽕나무도 자라고 있는 곳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집이 낡고 망가져있긴 했지만 우리가 고쳐가면서 살면 충분히 살만할 것 같은 슬레이트 지붕의 시골집이었다. 발암물질인 슬레이트 지붕의 교체비용을 지원해주는 지자체 사업까지 검색해보며 집주인과 통화를 해나갔다. 그 집은 우리와 통화하신 분의 부모님인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사시던 집인데,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형제 중 맏이가 모시고 있다고 했다. 통화한 분은 사남매 중 막내아들로 그 집을 관리하고 있었다. 집이 오래 비어있다보니 누군가 살면서 관리해주면 좋을 것 같다며 우호적으로 말씀하셨다. 하지만 결정은 가족회의를 통해서만 할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하셨다.

 

▲ 슬레이트지붕집 우리가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슬레이트지붕의 시골집
ⓒ 이파람

결국 슬레이트지붕 교체 사업은 우리의 설레발이 되었다. 슬레이트지붕 교체 사업을 받으려면 집주인의 동의서를 모두 제출해야했는데, 그런 이야기까지 급하게 꺼낸 게 실수였을까? 가족회의에서는 아직 할머니께서 살아계시기도 하고, 종종 도시에 있는 형제들이 함께 성묘를 가면 쉬어가는 곳으로 쓰기도 해서 세입자를 들이지 않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고 한다. 사실 귀찮은 일 감수하며 세입자를 받는다고 해서 특별히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니 그분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당장 살 집을 구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속이 탔다. 그때가 이미 2월이었다. 3월이나 늦어도 4월에는 이사를 가서 바로 농사를 시작하고 싶었던 우리는 아쉬워할 새도 없이 다른 계획을 고민해야했다.

 

우리가 이사 갈 집을 구하는 동안 모래무지네 가족은 집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모래무지도 처음에는 집을 새로 짓는 것보다는 근처 농가주택을 구입하고자 했으나 마땅한 집이 없어 결국 집을 짓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 뒤에는 집을 직접 지을지, 전문가에게 맡겨서 지을지, 흙으로 지을지 나무로 지을지 그 밖에 좋은 재료는 뭐가 있을지 등을 치열하고 꼼꼼하게 공부했다. 공부를 함께하기 위해 그 겨울, 지구학교 사람들 가운데 언젠가 시골에 집을 짓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다. 고음실이라는 마을 이름을 따 곰실곰집이라고 이름까지 정한 모래무지네 건축계획 세우기 겸 집짓기 공부모임이었다.

 

모임을 함께하다보니 우리가 집을 구하고 있는 상황도 다들 알고 있었는데, 3월이 되도록 집을 못 구하자 모래무지님께서 또 고마운 제안을 해주셨다. 집을 지으면서 우리가 살 집도 같이 짓겠다는 제안이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어차피 지구학교를 들으러 멀리서 오시는 분들이 묵을 곳도 필요하니 자연농을 배우고자 찾아오는 분들을 위해 게스트하우스같은 걸 지어보면 어떨까했는데 그걸 집 지을 때 아예 같이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같이 지어서 우선 우리에게 전세로 빌려주고 나중에 우리가 다른 집을 구하면 다른 사람에게 또 빌려주거나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할 수 있으니 괜찮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여기저기 더 알아봤지만 다른 집을 찾지 못해 모래무지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집은 당시 계획으로도 늦여름이나 가을 즈음에 완성될 예정이었기에 그동안 잠시 원룸에 살게 됐다. 원룸이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밭에서 2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 군부대 앞 편의점 2층에 서울처럼 월세로 살 수 있는 원룸이 있었다. 밭에서도 거리가 좀 있고 마당도 없는 열 평 원룸이 아쉬웠지만 어디까지나 몇 달만 살 곳이라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원룸치곤 넓고 월세도 서울에 비하면 아주 저렴했다. 언제든 바로 들어가 살 수 있었고, 집주인분도 모래무지님 부부와 아는 사이여서 몇 달이든 원하는 때까지만 살고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우선은 얼른 와서 때에 맞게 농사를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3월말에 잘 이사를 하고 밭에는 자전거로 왔다갔다하며 농사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길어야 네다섯 달 살 줄 알았던 그 원룸에서 1년 넘게 살고 있다. 집짓기 계획에 차질이 생긴 거다. 곁에서 지켜봤기에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한 집짓기인 줄 알고 있는데 어찌 이렇게까지 틀어질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예전엔 집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말을 들어도 실감이 안 났는데, 지금은 10년이 아니라 20년 늙는데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살 집은 고사하고, 초등학생 아들이 있는 그 가족이 살 집도 결국 아직까지 완성을 못했다. 얼른 그 집이 잘 마무리되어서 모래무지네 가족이 문전옥답을 둔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 집밖풍경 지금 사는 원룸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풍경, 군부대 바로 앞에 편의점들이 있다.
ⓒ 김진회

우리는 어디서 살지 여전히 고민이다. 저렴한 월세긴 하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돈이 들기도 하고, 그보다 밭과의 거리가 멀다는 점, 마당도 없고 수확한 농산물이나 농기구 등 물건을 보관할 만한 공간이 적다는 점, 원룸이라 밥 먹고 잠 자는 공간과 다른 작업을 하는 공간을 분리할 수 없다는 점 등이 아쉽다. 우선 올해까지는 특별히 대안이 생기지 않는다면 여기 살면서 시작한 농사를 마저 지으려 한다.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올 겨울까지는 끊임없이 짝꿍과 이야기를 나누어볼 생각이다. 전국에 있는 친구들과도 늘 이런 고민을 함께하고 있다. 실은 가진 것도, 별 계획도 없이 여기까지 왔다. 지금으로서는 모든 게 불투명하지만 분명 또 어딘가 인연이 닿을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