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마음의 날씨

참참. 2020. 8. 12. 06:04

아침에 눈을 떴더니 매미소리가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오랜만에 비가 오지 않는 밤, 창을 한껏 열어놓고 잔 덕이다. 어쩐지 기분이 좋다. 끝나지 않는 장마의 습기처럼 일상에 잔뜩 내려앉은 우울을 들이마시며 사는 중에도 가끔은 이렇게 문득 마음의 날씨가 갤 때가 있다.

그제는 나보다 더 우울해하는 친구와 얘길 나눴다. 내가 우울한 얘길 더했다간 이 녀석이 나보다 더 위험할 것 같아서 애써 삶을 긍정해봤다. 무슨 얘길 주워섬겼는지 모르겠다. 끝에 "그래도 너랑 얘기하니까 오늘은 술 안 마시고 잔다"는 말을 들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제 점심시간에는 "진회씨 휴가 언제 써요?"라는 질문을 들었다. '이 점심시간이 제가 요즘 가장 크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예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쉬는 날이 더 두려워질 때가 많다. 할 일도 없이 혼자 있을 시간이.

저녁엔 기타레슨에 갔다. 아침에 그 쏟아지는 비를 뚫고 기타를 메고 출근했었다. 다행히 퇴근시간엔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몹시 기초적인 걸 배우고 있는데도 잘 되질 않았다. 내 자신이 너무 답답했다. 도무지 내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손가락들이, 예쁘지 않은 소리만 자꾸 내고 있는 기타가 마음에 안 들었다. 조바심이 났다. 이렇게 해서 언제 멋지게 곡을 연주하나 싶어서.

돌아보면 늘 뭔가를 빨리 배워서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고 싶었고, 칭찬받고 싶었다. 여태 살면서 천천히 오랜 시간을 들여 이뤄낸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뭔가를 꾸준히, 느리더라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늘 동경하기만 했다. 뭐든지 빨리, 빠른 성과, 빠른 결과, 빠른 확인, 빠른 포기. 성격 한번 진짜 더럽게 급하다. 뭘 하면 그 다음을 생각하고 있다. 밥을 먹으면서 밥먹고나서 할 일을 생각하고, 일을 하면서 이 다음에 해야할 일을 생각하고. 다른 생각없이 그 순간에만 몰입하는 경험이 많지 않다. 누구나 그렇게 산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덜 그러고 싶어졌다. 작은 일 하나를 하더라도, 빨리 해치우고 다른 걸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하기보다는 그 일에 주의를 더 기울이고 싶다. 무엇보다, 어차피 이제 내겐 빨리 해치우고나서 하고 싶은 '다른 일'도 딱히 없다.

아무리 그치지 않을 것만 같던 비도 언젠가는 결국 그치게 마련이고, 나아지지 않을 것 같던 실력도 계속 한다면 분명히 나아지겠지. 연습한다면 늘 급하게만 살아왔던 습관도 조금은 고칠 수 있을 거고, 마음 속에 내리는 비도 밖에 내리는 비처럼 언젠가는 그치고 말 것이라는 걸 믿는다. 다만 너무 많이 무너지기 전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