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책읽기/마음이 머무는 구절

진심이 굳이 통해야 하나

참참. 2020. 2. 16. 17:30

 

"내 가슴속의 모든 진심이 굳이 통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생각해 보면 나조차도 모든 사람의 진심을 일일이 알아주며 살아오지 않았으면서. '아, 맞다, 그래도 너는 이런 진심이 있었지?' 하며 살지 않았잖아요.
 진심이면 언젠가 통할 것이란 믿음은 타인의 인정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말과 다름이 없습니다. 타인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했을 때에 적개심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의, 그럴듯한 자기기만 입니다." (허지원,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중에서)

뼈 때리는 지적이다. 사실 나 역시 진심이면 통할 거라는 믿음을 계속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진심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책에서도 언급되는 이른바 '소울메이트')을 찾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저자는 소울메이트를 찾는 사람에 대해서도 "실은 예측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상대를 원하는 것"이라고 냉정하게 지적한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너무 냉정하지 않나 싶지만, 뭐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 기억으로는 본격적으로 자의식을 갖게 됐던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진심'이라든가, '소울메이트'와 같은 생각을 이미 처음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 외로움이란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어쩌면 그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외로움의 반대급부로 그런 믿음을 점점 키워오지 않았나 싶다. 돌이켜보면 난 늘 외로워했다. 초등학생 때는 친구들이 먼 동네에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중학생 때는 내가 학교 친구들 속에서 이질적인 존재라고 느꼈다. 내가 스스로 이질적인 존재라 느낀 것도 있지만 친구들이 나를 그렇게 받아들인 면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같이 학교 다니면서 같이 게임하고, 점심시간마다 공 차고 노는데 뭐가 그리 다르게 느껴졌나 싶은데, 한창 사춘기이기도 했고 학교 끝난 이후의 시간을 그들이 함께 보낼 때 나는 혼자 보냈기 때문이 아니었나싶다. 중학교 졸업한 뒤로 초등학교, 중학교를 그 시골에서 9년 내내 같은 반으로 다녔던 친구들 중 지금 연락하는 친구가 아무도 없는 걸 보면 결과론적으로 뭔가가 좀 안 맞긴 했나 싶기도 하지만.

고등학생 때는 지금도 부끄러워하는 흑역사가 있다. 바로 당시 내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너에게 난 뭐니?'같은 연인에게도 웬만해선 던지지 않을 법한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다. 그 질문을 받은 친구는 정말 단 한번도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듯 몹시 황당해했고, 꼭 그 질문 하나 때문은 아니지만 결국 그 친구와는 어색한 사이가 됐다. 난 그냥 단순히 같이 노는 가벼운 관계보다는 뭔가 더 긴밀하고 끈끈하게 이어져있는 특별한 관계같은 걸 원했나보다. 그런 욕구는 연애에 대한 환상으로 이어졌다. '사랑'이라면 이 외로움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나름대로 여러 사람을 짝사랑하기도 했고, 대학교 가서는 선배들이 '대학생 되면 뭐 해보고 싶은 거 없었어?'라고 물을 때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연애요!'라고 대답하는 신입생이 됐다.

대학교 1학년 때는 나름의 노력에도 결국 연애에 실패했지만 2학년 때는 후배 한 명과 첫사랑을 할 수 있었다. 서로 연애경험이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동안 느껴왔던 그 외로움들을 그 한 명과의 관계에서 다 해소하려 들었다. 시도때도없이 그 사람만 생각하고, 연락하고, 계속 연결되어 있고 싶어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는 날 많이 사랑해줬지만 난 늘 그게 모자라다며 더 많이 날 생각해달라고 요구했다. 헤어지고나서야 내가 그를 참 많이 힘들게 했다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많이 미안했다.

지난날들을 이런 관점에서 돌아보니, 확실히 외로움이란 내 지난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외로움 느끼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난 왜 이렇게까지 외로워하는 걸까하는 생각을 그 전에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제 혼자 카페에서 진심이 굳이 통해야하느냐는 구절과 소울메이트 찾아다니는 것의 문제에 대해 가차없이 논하는 구절을 읽으면서 인정하기 싫었던 진실을 인정해야할 때가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정한 사랑, 소울메이트, 나를 이 외로움에서 구해줄 수 있는 내 환상 속에 있는 그런 관계는 존재하지도 않고 필요도 없다는 걸. 나부터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가 없으니까. 최근 우울할 때 자주 났던 생각 중 하나가,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하는 거였는데, 누구도 '그런 식의' 좋은 사람이 될 순 없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맘이 편한 면도 있다. 잔인한(?) 진실이지만 차라리 위로가 된다. 타인의 인정이 너무나 중요한 사람인 거 알고는 있었는데, 쉽지 않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내려놓도록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