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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l we dance?

참참. 2020. 2. 9. 09:31

Shall we dance?

일주일에 한번씩 스윙댄스를 배우고 있다. 여행이니 뭐니해서 가끔 한 주씩 빼먹는 등 아주 성실히는 못했다보니 못 따라가는 동작들도 있고 아쉬운 점도 많지만, 나름대로는 요즘 관심을 주고 있는 취미생활 중 하나다. 사실 서른 살이 되기까지 평생동안 춤은 나와 거리가 먼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제대로 배워본 적이 한번도 없었고, 변명이지만 우리 문화에서 '잘하지' 않는 것을 그냥 느낌 가는대로, 자연스럽게 해보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웠기에 몸치라 생각하며 살았다. 쪽팔림을 당하느니 차라리 못한다고 끝까지 빼서 재미없는 사람이 되는 쪽을 택해왔다. 나도 내가 남의 시선을 덜 신경쓰며 내 느낌대로 막춤이라도 출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지만, 그게 생각보다 내겐 너무 어려웠다. 배우지 않은 것은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수동적인 사람, 아쉽지만 돌아보면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춤보다는 훨씬 더 많이 시도해본 노래라는 영역에서는 상당히 객관적인 실패를 경험해봤는데, 그래서 그런지 춤을 직접 추는 것에는 지레 겁먹고 처음부터 크게 관심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우연히 프립이라는 플랫폼에서 한 스윙댄스 동호회에 하루 맛보기 클래스로 참여해보고나서 완전히 생각을 바꿨다. 첫날엔 이렇게 재밌는 걸 모르고 살았다는 게 억울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로 푹 빠졌다. 그런데 당시 강릉에 거주하는 상태여서 하루만 딱 참여하고 7주과정을 이어서 듣지 못해서 몹시 아쉬웠다.

서울로 이사를 오고 내가 처음 참여했던 기수의 다음 기수로 다시 들어갔다. 첫 수업 때는 이미 한번 배워봤던 거라 누구보다 잘했지만 두번째 주부터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졌다. 그래도 평생 몸치라 생각했던 것에 비해서는 할 만 했다. 동호회 선배인 강사님들도 워낙 잘 가르쳐주시고 다 처음인 사람들끼리 편한 분위기에서 서로 연습하는 동호회다보니 웬만하면 기본 정도는 출 수 있게 됐다. 음악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는 것도 즐겁고 파트너와 함께 추는 춤이다보니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는 것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가벼운 스킨십과 웃음을 주고 받으면서 함께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다보면 행복해진다. 왜 옛날부터 춤바람 난다는 말이 있고 이 동호회 홍보문구에도 수많은 커플이 탄생했다고 써있는지 바로 이해가 될 정도였다. 아는 사람 중에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만한 활동을 별로 안 하고 있고, 특히나 여성인 사람 대하는 건 더 어색해하는 사람이 생각나서 이 동호회를 추천했는데 내 다음 기수로 들어와서 지금은 나보다 더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동호회 활동은 금토일 위주로 이루어지고 주로 토요일 활동이 가장 활발한데, 다섯 시 반부터 두 시간동안 같이 새로운 동작을 익히는 '강습'을 하고, 일곱 시 반부터 두 시간동안은 '제너럴' 혹은 '소셜'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댄스파티 시간이다. 강습 비용과 제너럴 비용은 별도인데 학원이 아니라 동호회여서 그렇게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다. 따로 무슨 장비같은 게 필요한 것도 아닌 데다 강습이 7주 과정 전체에 7만원이고 제너럴은 참여시마다 9천원 정도니까 오히려 성인이 되어 즐기는 취미생활 중에 이 정도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겠다 싶을 정도다. 사람들이랑 친해지려고 뒤풀이 가서 마시는 술값이 다른 비용 다 합친 것보다 더 클 가능성이 높다.

나는 춤은 즐겁게 즐기고 있지만 동기들과 많이 친해지진 못했다. 처음 1학년 7주 과정 중 딱 한번 있는 밤샘파티에도 네덜란드 간다고 참여를 못 했었던 데다, 뒤풀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서 뒤풀이를 잘 안 가다보니 그렇게 됐다. 뒤풀이는 대학교 MT가 생각나는 분위기인데 처음 만나는 사람끼리니까 어색하고 대화 주제도 난감하고 여러모로 떠들썩하고 '마셔, 마셔'하는 분위기를 즐거워하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나와는 맞지 않았다. 술을 딱히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마시는 편이 아무래도 유리한데 난 술도 약한 데다, 시끄러운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 사람, 혹은 아주 적은 인원이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 나누는 쪽을 훨씬 더 좋아하는 편이다. 게다가 20, 30대 솔로 직장인 동호회 느낌인데 내가 아직 구직 중인데다 처음 참여하던 당시에는 유부남이었던 터라 그 안에서 내가 스스로 이질적인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뒤풀이는 항상 고기를 먹으러 가는데 그것도 채식을 지향하는 나와는 맞지 않는다. 거긴 채식한다고 말할 분위기도 아니고, 나 말고는 고기 먹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술자리에 잘 참여하지 않고 수업조차 종종 빠지는 데도 그럭저럭 반갑게 인사해주고 제너럴 때 홀딩(춤 신청)하면 어색해하지 않고 받아주는 팔뤄(주로 남성이 '리더', 여성이 '팔뤄' 역할로 춤을 춘다)들도 있고, 친근하게 대화 주고 받으면서 동작이나 스텝에 대해 서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리더 친구도 몇 생겨서, 아직까지는 계속 즐기고 있다.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느끼는 건 리더로서 '리딩'하는 부분인데, 스윙댄스에서 음악에 맞춰 즉흥적으로 춤을 추게 되면 춤을 리드하는 쪽이 리더다. 그 말인즉, 이 다음에 무슨 동작을 할지를 계속 생각해서 잡고 있는 한쪽 손 등을 이용해 팔뤄에게 신호를 주면서 계속 춤을 이어나가야한다는 것이다. 난 다음에 무슨 동작을 해야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서 멍 때리는 일, 무슨 동작을 할지 신호를 어떻게 주는 거였지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치거나 어설프게 신호 줘서 팔뤄가 어리둥절해하는 일, 옆에 춤 추는 다른 사람들이랑 부딪칠 때마다 더더욱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곡에 따라 몇분 몇초에 어떤 동작을 할지 다 완벽하게 정해져있고 파트너도 그걸 이미 다 숙지하고 있는 '공연'이 내겐 훨씬 더 쉬웠다. 공연 연습할 때는 그냥 외우기만 하면 되니까. 여태까지 배운 게 그런 거라 그게 제일 쉽고 즐겁다는 게 한편으론 씁쓸하다.

내가 언제까지 이 취미생활을 즐길지, 더 여유롭고 잘 추는 리더가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누군가와 또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게 된다면 꼭 같이 춤을 추고 싶다. 예전엔 막연한 로망이었는데 이젠 확실한 지향이 됐다. 삶을 즐기라는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게 춤이다. 어떤 멋진 시는 '춤 춰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라고 시작하기도 하지 않던가. 게다가 치매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 활동에 대한 연구마다 빠짐없이 뛰어난 효과를 나타내는 것도 춤이다. 계속 춤 추는 삶을 살고 싶다. 춤 추듯이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