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20~2022

내일도 있다는 걸 믿는 사랑

참참. 2021. 9. 4. 09:25

 

꽤 오래전부터 영화 <이프온리>를 굉장히 감명깊게, 여러번 봤었다. 내게 주어진 삶이 단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런 상황은 강렬할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내 사랑의 이상향, 모토는 이프온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사랑하자고 다짐 또 다짐하곤 했다. 그래서 후회를 남기지 말자고.

그건 무척 멋진 일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도 맞고,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고, 늘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도 맞다. 그런 이야기들에는 늘 끌린다. 여전히 그런 생각을 통해 지금의 소중함을 느끼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삶이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만큼이나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이유로 너무 급하게 갈 필요는 없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그 마음이 조급함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는데, 어쩌면 그런 핑계로 내 조급해지는 마음을 합리화해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그 상태에서 벗어나보기 전까지는 내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에 대해 제대로 바라볼 기준조차 없었지만 말이다.

오늘이 마지막날인 것처럼 사는 것도 소중하지만 내일과 모레도 살아갈 것을 염두에 두고 사는 것도 소중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로 이어질 것을 믿는다는 게 오늘에 후회를 남긴다는 말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어쩜 그렇게 까맣게 몰랐을까 싶고, 한편으로는 알 수가 없었겠다 싶다. 내일은 곁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지금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게 해줄 수 있는 생각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내일도 곁에 있을 거라는 믿음이 지금을 더 소중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걸 느꼈다. 내가 쓰고 있지만, 이렇게 쓴 걸 스스로 읽어봐도 겪어보기 전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

어린 시절 첫사랑의 정의에 대해 어디선가 본 글이 강렬하게 마음에 남았었다. 더이상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 마음에 남은대로 표현하면, 첫사랑이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떠올리며 비교하게 되는 사람, 지금 이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의 기준으로 삼는 사랑의 경험인 것 같다. 내가 지금 첫사랑이라 부르는 그 연애 이전의 청소년 시절에도 '본격적인' 연애는 없었지만, 중학생 시절의 짝사랑도 있었고 고등학생 시절의 짝사랑도 있었다. 그 사이에도 온라인에서 만나 서로 매일같이 메시지를 주고받고, 손편지도 주고받고 그러면서 사랑한다는 말도 주고받았던 경험도 있었다는 게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그때는 또 그때 나름대로의 진심이었던 그 모든 경험들을 두고 스물한 살의 연애를 첫사랑이라고 불렀던 것은 그런 기준에 따라서였다.

그 기준에 따른다면, 어쩌면 더이상 그 경험을 첫사랑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젠 그 경험이 나에게 그런 의미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첫 연애에서보다 더 조심스럽게, 더 소중한 마음으로 다가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다시는 그럴 수 없을 줄 알았다. 첫경험보다 강렬한 것은 없기에, 첫 연애 이후에서의 마음들은 아무래도 첫 연애에서만큼 조심스럽지는 않았다. 모든 게 처음이던 그때보다 더 조심스러울 수는 없다고 당연하게 여겼다. 조금 서글픈 마음이 들어도, 원래 처음의 느낌은 처음에만 느낄 수 있는 거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다시는 느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손을 잡고 싶은 마음, 안고 싶은 마음을 조심스러워하는 경험을 다시 하고 있다. 그것에서 답답함이나 조급함이 아니라 설렘과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너무 신기하다. 첫 연애에서보다 더 설렌다. 조심스러움이 답답하긴커녕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옷깃만 스쳐도 심장이 뛰고, 손을 잡을까말까, 안고싶다, 는 마음을 여러번 해봤다고해서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소중하게 느끼고 조심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느낄수록 점점 더 이상 예전처럼 손 잡는 것도, 포옹하는 것도, 함께 걷는 시간도,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겨버릴 수 없게 되어가고 있다. 당연하지 않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당연하지 않고 정말 소중하다는 느낌을 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이 소중하다는 감각이 몹시 소중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주고받은 메시지에, 두 번이나 눈물이 날 것같은 기분이 됐다. 얼마나 날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아껴주는지 너무 느껴졌다. 친구에게 "더 너를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라는 조언을 들었던 기억도 떠올랐고, 어쩐지 평생 한번도 나를 이렇게 소중하게 여겨준 사람은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울컥했다. 이렇게 말하면 그동안 나를 아껴주었던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살 수 있게 해주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실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순간엔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째서 그런 느낌일까에 대해서는 그 다음에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그런 느낌이 들었다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꼈고, 또 기억하고 싶다. 소중하니까. 사람은 누군가를 아낄 때에도 결국 자신이 아끼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아낄 수밖에 없고, 그러나 서로의 방식이 달라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달되는 마음만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느끼는 마음을 진솔하고 세세하게 이야기해주고 우리의 관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이 순간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보여주고 그 마음으로 나를 그 일상에 함께 그려주는 것같은 느낌이다.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고, 계속되는 이야기 속에서 점점 더 전해지고 있다.

잠자리에 누워서 생각했다.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때면 뜨거운 환희와 함께 찾아오던 어떤 불안감이, 그때그때 색깔과 크기는 달랐지만 늘 조금씩은 깔려있던 어떤 두려움이 지금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내일 아침에도 그에게 연락이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게 몹시 소중하고 안심이 되는데, 언젠가는 그 마음이 변하고 연락이 오지 않을까봐 두려운 마음같은 건 신기하게도 비집고 들어오지 않는다. 내일이 있다는 걸 알기에 오늘 모든 걸 보여줘야한다거나, 오늘 드는 안고싶은 마음을 참을 수 있다. 그걸 참는 마음의 소중함까지 느낄 수가 있다. 내일이 있을 것을, 내일도 사랑할 것을 자연스럽게 믿고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하고 있지만, 그게 되는대로 흘러가는대로 내버려두는 건 아니다. 우리의 관계의 내일을 우리는 같이 고민하고 있고, 만들어나가고 있으니까. 우리가 겪고 깨달아온 모든 것들 덕분에 지금이 더 소중하고, 이렇게 정확한 타이밍에 만난 것은 운명적이라는 것도,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 속에 상대방을 운명의 상대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우리는 둘 다 그러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나고 있으니까.